이러한 요인들이 서로 얽혀 있으면서 상호 간에 원인과 결과를 제공했다.
근대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세력과 식민지화를 주도한 세력이 다르기 때문에 두 논쟁은 다른 듯하지만.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
조선의 식민지화 책임 문제는 크게 일본의 책임론과 조선 정부의 무능론으로 나뉘었다.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결국 을사늑약과 강제합병조약으로 귀결되었다.내부 문제로 무너져가고 있었던 러시아가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었다.
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수백 년 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화에 실패한 청과 조선이 몰락했고.
다양한 요인 중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할 수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대표적 사과 산지인 경북은 아열대기후에 진입해 2070년대엔 사과 재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전남 나주시에서 유명한 배는 2050년대부터 국내 재배 적지(適地)가 급격히 감소해 2090년대에는 거의 없어질 것으로 예측된다.지난해 상반기(1∼6월) 감척 신청은 4척에 불과했다.
기후 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2100년에는 강원 일부에서만 재배될 것이라고 했다.다만 기존 주산지 농어민들은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다.